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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내란음모사건 기록물 국민 앞에 모두 공개되어야
2019.05.09
의원실 | 조회 926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기록물

국민 앞에 모두 공개되어야

 

 

궁지에 몰릴 때면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가 나타납니다. 유시민의 말이 맞다며 본 의원에 대한 공격에 나선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80년 상황도 잘 모르는 81학번으로 84년 서울대민간인 프락치 사건 때 유시민과 공범이었다는 것 때문에 유시민 두둔에 나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김대중정부 때나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 근무를 했던 두 사람을 내세워 유시민의 주장이 맞다며 팩트가 아닌 거짓으로 본 의원을 인신공격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년을 불행하게 한 대통령 가족의 부패스캔들의 주인공 홍삼트리오의 막내이자 정권의 소총수 역할을 자임하는 김일씨가 “(본 의원의 주장을 반박할)문서상의 자료를 신군부 측이 모두 없애버려서 분하게 여긴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유족들이 동의한다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김대중씨 관련 자료를 국민 앞에 즉시 공개하겠습니다.

 

본 의원은 80년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룬 뒤 1985MBC 공채22기로 입사한지 2년 만에 방송사 최초로 노조를 만들어 언론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92년 다시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84년 무렵 당시 정부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유화정책을 펼치던 때입니다. 그래서 1984년 학원자율화라는 명목으로 공안사범의 복학, 시국사범 교수들의 복교가 허용되었고 언론사 등 그간 운동권 딱지 때문에 취직하지 못했던 대기업들에도 취직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집권 여당과 청와대에 본 의원의 입사 동기 2, 선후배들이 5명이 있어 충분히 허위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 데도 MBC 입사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고의적으로 인신공격하는 것은 결코 묵과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1, 대법원) 증거의 요지 첫 장(000155)에 핵심 증인으로 유시민 외 28명의 이름이 나오고 그 중 당시 국회의원 출신은 6명입니다. 특히 김대중 사형 선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김대중씨 최측근 1명과 국회의원 출신 피고인 2명의 이름이 판시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김대중씨 사형과 다른 피고들의 중형선고와는 법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본 의원이 결정적 핵심 증인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허위 정치 선동입니다.

 

심지어 본 의원의 증언이 이해찬 씨가 김대중내란음모에 말려든 계기가 되었다는 거짓 선동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명백한 허위사실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것입니다. 자신 장인의 권유로 6.25. 만나서 자수하기로 했는데 6.24. 체포되었다고 합수부 진술서에 쓴 이해찬은 6.30.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6.26. 합수부 1회 진술서(000367~473, 107)6.29. 2회 진술서(000474~533 59)7.1. 3회 진술서(001331~1442 111) 등 총 277쪽 분량의 진술서로 모든 것을 자백합니다. 그는 1.26. 김대중씨와 면담, 4.26.경 김일과의 개별 만남 등 김대중씨 관련 3회 자백하고, 3.25부터 5.16까지 16회나 이, 우를 만나 가두시위를 지시받고 45.8. 민청협 확대간부회의에서 유혈사태를 감수하고 4.19와 같은 학생시위로 김대중을 옹립하기로 결의”(000421-422)(001394~1395), 5.10. 심재철에게 “4·19같은 반정부 투쟁으로 가두시위를 가열시켜 정부공공기관을 점거하고 정부가 전복되면 국민연합이 과도임시내각이 될 것이며, 돌멩이, 각목, 화염병을 준비하도록 학생회에 전했다(001396)며 학생시위의 배후로 김대중씨등 정치권이 작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국민연합 공동의장이며 전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씨 밑으로 국민연합, 국민연합 밑으로 민청협 도표를 그려 민청협이 협력단체임을 드러냈습니다.(001443~001444)

 

본 의원이 6.30.)체포되기 전까지 이해찬씨는 3회에 걸쳐 합수부에 진술(6.26. 6.27. 6.29.) 하는 등 총 4회의 합수부 진술을 했으며 7.3. 시작으로 총 4회의 피의자신문조서에서 자백(001445~1632)을 했고 본 의원에 대해서만 총 8쪽 분량으로 7(000403, 405, 418, 424 ) 언급했습니다. 본 의원은 이해찬씨 등 앞서 모든 것을 진술한 여러 사람들의 진술서에 꿰맞춰진 잔인한 고문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러나 본 의원의 진술서에는 이해찬씨 이름이 단 한 번 나왔고, 다른 학우들의 이름 거명이 채 다섯 명이 안됩니다. 제가 이름을 불어 새롭게 지명수배되거나 혐의가 인정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반면 이해찬씨는 민주화 동지 101명의 이름과 행적, 전과, 복학생 유무를 적은 7쪽짜리 리스트(정수 932~938)를 합수부에 제출합니다. 물론 고초를 겪었을 것을 짐작은 하지만 민청협 회원 48명 등 민주화 운동 복학생·재학생 리스트가 합수부에 넘어가면 어떨 결과가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꼭 그렇게 상세한 리스트를 통째로 작성해 넘겨줬어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유시민씨의 77명 상세 언급으로 계엄당국은 서울대 학내 동향에 관한 상세지도를 확보한 것이고, 이해찬씨의 101명 상세리스트 제출로 민청협 등 재야청년 동향이 당국에 손쉽게 확보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중 김대중씨의 혐의를 입증한 사람이 10명입니다. 그 사람들이 합수부 진술, 검찰 피고인 진술 및 참고인 진술, 법무사 앞 증인진술 등을 통해 복학생 등 여러 사람들의 서울대 가두시위 관여를 언급해서 유시민 외 복학생 17여명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된 것입니다.(첨부자료 참조) 그런데도 본 의원이 김대중씨 사형선고에 핵심증인이라는 집권여당 사무총장의 허위 발언까지 나옵니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을 보면 김대중씨 공소장에도 언급되지 않은 본 의원은 김대중씨, 이해찬씨를 비롯한 타 피고인들 증거목록에 일절 언급이 없음이 명백한데도 허위사실을 상습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해찬 진술서 1980.6.26. 000421~422

46) 5.6. 14:00 아현동 소재 포그니 경양식집에서 이범을 만나 본인은 서울대에서 5.14. 계엄해제 시한을 설정했으며 계엄이 해제 안되면 가두로 진출할 것이라고 보고하니 이범은 잘되었다고 하여서 5.14까지 계엄이 해제 안되면 가두시위 하도록 하고 총학생회를 움직여 서울시내 각 대학과 지방대학이 일제히 시위하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47) 5.8. 12:00 반포 경양식집 애천에서 이, , , 동 등을 만나 민청협 확대 간부회의를 열어 확대시위 관계 논의 끝에 그 행동으로서 조우로부터

·조속한 시일 안에 대규모 가두시위를 하여 정부를 타도하고

·각 대학은 다음에 알려주는 일자에 광화문에 집결하며

·각 대학 시위코스는 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결정토록 하고

·경찰저지선 돌파를 위해 각목, 화염병, 돌멩이를 준비하고

·경찰은 요즘 사기가 저하되어 있으므로 투석만 하면 얼마든지 뚫릴 것이며

·충돌과정에서 부상자가 생기면 일반시민이 합세하여 4.19와 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면 중앙청을 비롯한 주요 시설물 점령하는데 이때 학생들의 희생이 있을 것이므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등을 지시받았고

 

이해찬 진술서 1980.6.27. 000483~000487

4.19.에는 현금 5만원을 받았으며 5월 들어서는 학교를 교외시위로 유도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고 김대중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국민연합 등 사회단체와 공동으로 반정부활동 공동으로 한다는 것을 얘기들었습니다. 본인은 이범의 말에 부분적으로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동조했습니다. 범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학생시위를 유도하여 정부전복을 시도하라고 했으며···(중략)···5..8. 영동 인창상가 애천에서 만나 국민연합에서 성명을 냈으니 국민연합과 학교시위 공동투쟁으로 발전되기 시작했으며 교외로 시위를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해찬씨는 또한 본 의원의 공판에 앞서 이범의 지시로 심재철에게 서울대의 데모를 배후 조종하였다고 공판 중 시인했음이(8.21. 15차 공판속기록, 001417) 당시 신문 4곳에 보도되었습니다.

 

이해찬 공소사실 시인 공판 진술

 

검찰: 피고인은 이범 피고인을 아는가요.

이해찬: 저의 고등학교 및 대학교 4년 선배로 민청협의 같은 회원이라 잘 압니다. 그리고 1980.1 하순경부터 자주 만나 학생데모 등에 관하여 논의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에게 서울대의 데모를 배후 조종하였습니다.(15차 공판, 001417)

 

검찰: 그때 이범 피고인으로부터 앞으로 현 정부의 정권연장 기도를 막기 위하여는 학생운동의 강화가 필요하니 서울대는 복학생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하라는 지시를 받은 일이 있는가요.

이해찬 네. 있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417~001418)

 

검찰: 그때 장표는 국민연합을, 석과 황성은 교회 측을, 피고인과 이, 영은 서울대를, 우는 중대복학생 이, 한신대 복학생 김, 연대복학생 송, 이대 복학생 최순을 각 담당하여 실천하기로 하였지요.

이해찬: . 맞습니다.(이해찬 15차 공판, 001418~1420)

 

검찰: 피고인은 1980.3.18. 19:00경 아현동 소재 포그니 경양식 집에서 이범을 만나 동인으로부터 학생회와 대학 신문을 복학생들이 장악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지요.

이해찬: .(15차 공판조서 001421)

 

검찰: 그 때(4.17. 15:00경 혜명다방에서) 범 피고인으로부터 참배 후 계엄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을 구호로 하여 4.19 묘지로부터 가두시위를 전개하라.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어야 계엄해제를 관철할 수 있다는 지시를 받았지요.

이해찬: 4.19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묘지 참배만 하고 가두시위나 동아일보사 앞에서의 농성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지시는 받았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432-1433)

 

검찰: 그때 조우 피고인이 서울대는 망 김상진 추도식에서 계엄령 해제 요구 시위가 있었으니 타 대학도 민주화 대행진의 이슈를 계엄령 해제 등 정치적 문제로 전환하라고 하여 전원이 이에 동의한 사실이 있는가요.

이해찬: . 있습니다.

검찰: 총학생회를 개최하여 12,000여명의 학생들로 하여금 15개의 플랭카드와 100여개의 피켓을 앞세우고 비상계엄령의 해제등 구호를 외치면서 교문 앞, 기숙사 앞, 교련장, 4.19탑을 돌아 위 광장으로 진행하게 하는 등 불법시위를 교사한 사실이 있지요.

이해찬: .(15차 공판조서 001443-1444)

 

검찰: 그때(:5.6. 16:00경 포그니 경양식집에서) 범 피고인으로부터 타 대학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서울대와 같이 보조를 맞추어 일제히 가두시위를 벌여서 포고령 위반으로 수많은 사람이 구속되어야 계엄이 해제될 수 있다는 등의 격려를 받은 사실이 있지요.

이해찬: 학생시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445-1446)

 

검찰: 1980.5.6. 16:00경 위 포그니 경양식집에서 이해찬과 만나 동인으로부터 서울대에서 교내시위를 지양하고 5.14부터 일제히 가두로 진출하기로 결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피고인이 타 대학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여 서울대와 같이 보조를 맞추어 일제히 가두시위를 벌여서 수많은 사람이 구속되어야 계엄이 해제될 수 있다고 격려하여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도록 유도한 일 있나요.

: 이미 신문에 보도된 것이고 영등포에서는 불량배가 많으니까 거기서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351)

 

이런데도 진보진영은 본 의원 혼자서 공판에서 허위진술을 했다는 공세를 합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해찬의 공소사실은 다른 피고인들로부터도 다수가 입증됩니다.(첨부파일: 범례별 피고인 공판 중 공소사실 시인 속기록 참조)

 

당시 보도에 따르면 전 언론사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24명 중 18명이 공판 중 공소사실을 시인했음을 큰 제목으로 보도하였습니다.

 

김대중씨 공소사실 시인’(한국, 조선. 동아 1980.8.20.) ‘공소사실 거의 시인’(경향, 한국), ‘좌익활동 시인’(동아 1980.8.19., 조선 1980.8.19.),

 

공판 중 김대중씨에 대한 비난이나 불리한 증언에 대한 기사 제목도 다수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안돼 국가적 다행’(동아, 한국 1980.8.29.), ‘북괴관련 알고 한민통 관여’(조선, 경향 1980.8.29.), ‘북괴밀착 알면서 한민통 접촉(한국, 1980.8.29.) ’유신인사 2만 제거 계획, 조총련 알고도 한민통 관여‘(동아 1980.8.30.), ‘유신인사 처형계획,(한국, 1980.8.29.), ‘반정 고취 활동 공소사실 시인’(한국, 1980.8.21.), ‘공소사실 시인’(경향, 1980.8.20., 동아 1980.8.22.).

 

학생시위와 관련한 피고인 기사는 O, O범 이해찬, 공소사실 시인’(동아 1980.8.22.), ‘이해찬 허위진술 시인’(한국, 1980.9.3.), ‘이해찬 부인(否認)진술 뒤집고 사과’(경향 1980.9.3.), ‘학생 교외 시위주도, 각목, , 준비시켜’(한국, 1980.8.23. : 설훈 송원에 대한 보도) 등의 제목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본 의원은 서울대시위가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였고 이해찬씨의 시위관련 언급이 조언이라고 생각했지 지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해찬씨의 지시가 있었다고 했지만 국민연합과 김대중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고 두 번 부인하고 각목사용을 부인했습니다.

본 의원은 김대중씨가 준 20만원(유시민 검찰참고인 진술조서)시위자금이라고 인정하라는 합수부의 고문 속에서도 버텨서 김상진열사 장례금임을 주장했고 결국 통장등 증거로 입증되어 기소되지 않았습니다. 1980411일 서울대에서 열린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상주격인 본 의원이 김대중씨에게 받은 조위금 20만원은 농대학생회에 전달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김대중씨도 법정에서 같은 진술을 했습니다. 본인은 공판 중 김대중씨와 국민연합의 관계나 지시에 대한 신문에 국민연합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16차 공판조서 001632)라며 부인했습니다.

 

제가 보수 진영에 입당한 직후부터 이해찬 씨는 본 의원에 대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가해자로 공격을 시작합니다. 김대중정권 출범 직후인 1998년 이해찬씨는 심재철이 먼저 잡혀 허위자백 한 것에 꿰맞춰져 자신이 고문을 많이 당했다라는 파렴치한 허위사실을 인터뷰합니다.(신동아 98.6월호)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후 이 말은 사실인 것처럼 대중에 오인되었습니다.

 

김대중 씨의 사형선고 이유는 국가보안법위반 중 반국가단체의 수괴 혐의입니다. 1심 판결문 법령의 적용(1심 판결문 000159)을 보면 동법 제38조 제1항 제1호에 의하여 형이 가장 중한 판시 국가보안법 위반죄에 정한 형으로 피고인 김대중을 사형에 처하고라 기재되어 있습니다. 김대중 씨 역시 1심 최후 진술에서 한민통을 내 목숨을 앗아간 문제라고 진술했습니다.(119차 최후진술, 000337). 적용된 법령을 기준으로 보거나(1심 판결문, 법령의 적용 000158), 재판부 기록목록에 수록된 증거목록 범례(증거목록 범례, 002226)를 보거나 어디에도 본 의원과 김대중씨 사형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데도 민주당 사무총장은 본 의원이 김대중 사형선고의 핵심증인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습니다.

 

본 의원은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 즉 유죄입증 증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 대법원 판결문 263) 24인 피고인 중 가장 나중에 잡힌 후 90% 이상 본 의원의 행적만 진술해서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체포되거나 혐의를 받은 일이 없습니다. 24명 피고인중 유일하게 김대중씨나 다른 피고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법정 진술이 없습니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총 82쪽 증거목록 어디에도 본 의원의 이름이 증거, 공소사실 입증 증인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으며 김대중씨 공소장에도 없고, 김대중씨 항소이유서, 상고이유서에도 공소사실을 시인한 피고인으로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씨 등 피고인 공소사실 입증을 위한 검찰이나 합수부의 참고인 진술조서, 법무사 작성의 증인신문조서를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김대중씨 수사기록 목록(000893~00909. 001396~001409)에 사건 피고인 24인 중 유일하게 본 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피고인 중 16명이 반성문을 제출했는데 본 의원은 낸 적 없습니다.

 

본 의원은 이해찬씨 스스로 자신의 합수부 진술서를 공개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101명의 행적을 기록한 7쪽 리스트 작성 경위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자당에 불리한 진실은 철저히 은폐하고 소수에 의해 부정하게 유통된 카더라 통신이 사실인 양 국민여론을 호도하는 도구로 삼는 행위는 잘못입니다. 본 의원이 자유우파 진영에 있다는 이유로 온갖 허위사실로 당의 인사들을 동원해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행태는 정책정당을 표방하는 공당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2019. 5. 9.

국회의원 심 재 철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공식 증거>

 

판결문

1심 판결문 증거의 요지에는 유죄로 인용한 증인이름이 판시되어 있습니다.

공소사실을 100% 유죄로 판결한 판결문 증거의 요지란(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50명의 명단이 나옵니다. 이 명단이 유죄 판결의 핵심증인 명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당 문건에는 유시민을 비롯한 학생 운동권과 복학생 17, 김대중씨 최측근 7, 피고인 2명 등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 유죄로 판결되게 한 총 50명이 판시됨.

 

2. 증거목록(육본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가 재판부에 제출)

82쪽 분량의 증거목록(002246~002327)에는 각 피의자 별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와 김대중씨에 대한 경찰·검찰 증거목록(002227~2245)을 포함해 피고인 별 목록 어디에도 본 의원의 이름이 없습니다. 이는 김대중씨(19)를 포함 타 피고인의 공소사실과 본 의원과 관계가 없음이 명백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김대중씨를 비롯한 전 피고인이 자백진술을 했고(김대중 공소 범죄사실 자백 002227002235, 이해찬 공소 범죄사실 자백 002273002275) 대중씨 사형 선고의 배경, 국가보안법 반국가단체 수괴혐의 즉 한민통건의 유죄 입증의 증인은 내란음모사건 피고인인 김OO, OO입니다. OO피고인은 공판 중 김대중씨와 한민통 관계를 입증했습니다.

 

증거목록에 수록된 김대중씨에 대한 검찰 증거:

검찰관 작성의 피고인 김대중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 6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자 12(, , , , , , , , , , , )

법무사 작성의 증인신문조서 7(, , , , , , )

 

증거목록에 수록된 김대중씨에 대한 경찰 증거

군사법경찰관의 피고인 김대중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1~16), 피고인 진술서(1~2),

군사법경찰관 작성의 진술서 작성 24(동 피고인 7(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OO)

 

3. 김대중 씨 기록목록(000893~909)(001396~1409)에 피고인 중 본 의원만 없음

김대중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진술서, 피의자신문조서, 압수조서 및 참고인진술조서, 수사보고서 등의 목록에는 고소인을 제외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의자 22인의 진술서, 자백, 참고인진술, 자백이 김대중씨의 공소사실 유죄의 증거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4. 항소이유서와 상고이유서에 본 의원에 대한 언급이 없음

김대중씨는 항소이유서와 상고이유서에서 자신이 사형선고받게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유죄 증거가 된 이OO와 김OO, OO의 진술 그리고 같은 피고인인 김OO OO의 증언을 유죄의 증거에서 배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김대중 항소이유서 3280·3282·3284, 김대중 상고이유서 4304~4305, 각각 변호사 김동정 작성).

항소이유서에서 김대중씨는 정부 전복을 모의했다 함은 터무니없는 말이고(4294)’라며 동 피고인 이OO의 법정 공소사실 시인을 부인했습니다.

김대중씨 변호사 변론문에서는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관련에 대해 검찰에서의 김OO(동 피고인), OO(동 피고인), OO, OO, OO에 대한 진술조서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못되며(중략)이 법정에서의 김OO, OO, OO의 진술만으로서는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변론요지서 1913)고 했지만 이 변론은 증거에 의해 배척되었습니다.

 

5. 피고인 자백 진술서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전원이 자백해서 각 피고인 별 증거목록에 자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OO527일 진술에서 이 같은 512일 북악파크호텔에서 열린 국민연합 모임의 발언 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며, 김대중의 정책실장인 이O영 교수도 612일 해당 내용을 인정하고, 당일 이O동 목사도 진술했으며, 김대중씨도 614일 똑같은 내용을 자백하는(김대중 614일 피의자신문조서) 본 의원이 체포되기 전 6.30. 이전에 피고인 모두가 자백했음이 증거목록과 관련 진술서에서 확인됩니다.

 

이후 공판 중에는 역시 예O(김대중씨 비서실장) OO(민주헌정동지회 공동대표)씨 뿐만 아니라 서O, O, O, O, O완 등이 공소사실을 전부 시인 진술했습니다. 한편, 내란음모의 근거로 지목된 민청협의 58일 애천경양식집 모임 내용을 제일 먼저 인정한 사람은 조O(국민연합 집행위원)이며 619일 자백진술했습니다. 이후 이O, 설훈, 이해찬등의 자백진술이 이어졌습니다.

 

6. 피고인들의 공판 진술

검찰은 국민연합의 지시로 조직적인 가두시위를 기획한 이해찬과 이O표의 법정 진술, 폭력을 정당한 것이라고 말한 문O환의 진술, 설훈과 송O원의 과격 폭력시위 실행을 시인하는 진술에 주목했습니다. 이같은 진술은 사회의 혼란을 틈타서 집권을 의도했다는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내란음모 범례 제278조에 의거한 유죄 판결의 근거들이었습니다.

 

이해찬에게 국민연합의 지시를 내렸다는 조O우도 이해찬의 공소사실 시인과 마찬가지로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했습니다.

 

O, 설훈 공판 진술

 

검찰: 피고인은 그날(1980.4.10. 17:00경 뿌리 경양식 집에서 이O, O표 임O, O남 등과) 이해찬으로 하여금 서울대 데모를 주동하게 한 다음 타 대학의 데모를 유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하여 참석자들의 동의를 얻은 사실이 있는가요.

O: .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385)

 

검찰: 그때(:1980.4.15. 12:00경 최O엽의 집에서) O우 피고인이 정치 일정이 불투명하고 유신잔당이 음모를 꾸미고 있으니 고려대에서는 석탑제를 중지하고 계엄령해제등의 정치 문제를 내세워 데모를 하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있나요.

설훈: . 학교 분위기를 보아 데모로 유도하겠다고 동의하였습니다.(16차 공판조서 001561)

 

검찰: 그래서 피고인은 그들에게(민청협 회원) “학원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이를 가두시위로 발전시켜 시내 중심가에 집결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O: . 밖으로 밀려 나가면 좀 쎈 압력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391-1392)

 

검찰: 다음날(5.17.) 10:00경 이해찬 설훈, 순 등이 이화여대에 가서 전국 대학생 회장단 회의에 참석중인 서울대 대표 심재철 고려대 대표인 이재에게 위 사실(국민연합에서 20일 모임이 있다는 것)을 전달하였는가요.

O: 이해찬은 서울대 대표 심재철을 설훈은 고려대 대표 이재를 만나기로 하였는데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15차 공판조서 001401)

 

검찰: O우의 지시로 피고인 및 이해찬, 순등이 이화여대에서 열리고 있는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장에 가서 소속대학 대표에게 국민대회의 내용을 전하기로 하였는가요.

설훈: 이화여대에 열리고 있는 55개대학의 총학생회장단의 결정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하여 학생 시위를 빠른 시일내에 해야 한다는 것을 정하도록 연락했습니다.(16차 공판조서 001583-1584)

 

검찰: 피고인은 5.17. 09:00경 아코디언룸에서 속개된 회의중 이해찬 피고인으로부터 국민연합에서 국민대회 개최일자를 동원 20일로 정하였으니 시위일자를 맞추어 20일로 결정하라는 지시를 받고 시위일자를 20일로 정하였지요.

심재철: 국민연합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16차 공판조서 001632)

 

 

 

검찰: 그때(4.11. 18:00경 농성장에서) 피고인이 그들을 격려하면서 소수의 농성은 하지말고 4.19에 초점을 맞추어 대대적으로 학생을 동원하여 계엄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 대정부에 초점을 맞추라고 한일 있지요.

: 4.19때와 같이 초점을 바꾸라고 했습니다.(16차 공판조서 001482)

 

검찰: 그 당시(: 1980.4.20. 13:00경 송원의 집에서) 단식 농성을 하면서 3가지 성명서가 발표되었었지요.

: .

검찰: 위 송원 집에서 모였을 때 성명서 발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서울 농대생 김상진 추도식에 대한 이야기와 각 대학의 학생운동 상황에 대하여 토론을 하면서 중대에서도 학내문제에서 탈피하여 계엄해제, 유신잔당 퇴진, 명백한 정치일정 제시등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전환하여야한다는 논의를 한일있지요.

: 제가 김상진 추도식이야기를 하고 학내문제는 중단하라고 하면서 위와같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때 송원이가 가로막으며 너는 너무 정치적이라고하며 좀 쉬라고 하면서 할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16차 공판조서 001482~001484)

 

O환과 조O우는 국민연합과 민청협 관계를 법정 시인

 

검찰: 국민연합과 민청협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O: 국민연합의 산하단체가 민청협입니다.

(13차 공판조서 001012-1013)

 

검찰: 국민연합의 의사가 조우를 통하여 민청협에 전달 된 것은 사실인가요.

: .(16차 공판조서 001469)

 

검찰: O우가 실질적인 민청협의 최종결정권을 가졌었나요.

: .(16차 공판조서 001471)

 

변호사 강O: 국민연합과 민청협과의 관계는 어떠한가요.

O: 국민연합의 중앙 상임위원장, 중앙 상임위원등이 민청협의 고문으로 계시지만 명령 관계는 아니고 협조적인 관계이고 종적인 관계는 아니고 횡적인 관계입니다.(19차 공판조서 001870-1871)

 

검찰: (1980.3. 초순 피고인 집에서) 피고인은 조O우 피고인(국민연합 집행위원, 민청협 회장)에게 젊은이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국민연합에 들려주고 국민연합에서 결의된 사항이 젊은이들에게 전파되도록 노력하라면서 활동비로 금5만원을 제공한 사실이 있지요.

O: . 돈을 주었습니다.(13차 공판조서, 001018)

 

 

 

학생시위 교사를 시인한 설훈

설훈이 한참을 망설이더니

“···(중략)···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대정부 가두시위를 벌여 각 대학이 광화문에 집결하여 각 대학별로 정한 정부의 중요 관공서를 점거하면 된다면서 그 시기 및 방법은 각 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중략)···그가 계속하여 말하기를 각 대학이 경찰과의 충돌에 대비하여 돌, 화염병 등으로 조직적으로 대항하면 경찰은 사기가 떨어져 발포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군이 개입하여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이때 흥분한 일반 시민들과 합세하여 관공서를 점거하게 되면 치안이 마비되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정부는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중략)···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여 학생 동원에 힘쓰고 돌 및 화염병을 준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신륜 증인신문기록, 000689-000691, 1980.8.10.)

 

변호사 박영호: 피고인은 5.13. 조직적인 가두시위에 돌입하기로 고대에서 의견을 모은 다음 구체적인 방법으로 각 대학별로 분산하여 교외로 나가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대항하여 도심지까지 진출하여 반정부 폭력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한 후 학생회장단에 통고한 일이 있지요.

설훈: . 있습니다.(24차 공판조서 000158-160)

 

 

7. 김대중씨나 사건 피고인들로부터 금품수수 사실이 없는 유일한 피고인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24명 중 김대중 씨나 다른 피고인들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법정 진술이 없는 사람은 본 의원뿐입니다. 본 의원 이외 다른 모든 피고인들이 김대중 씨나 동 피고인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법정 증언을 합니다. 그 중 일부입니다.

검찰: 피고인은 김대중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지요.

: . 있습니다.

검찰: 언제 어디에서 얼마를 받았나요.

: 1980.1. 초순 김대중 피고인의 집에서 30만원, 2월에 30만원, 3월 중순경 100만원 도합 160만원을 받았습니다.(13차 공판조서, 001045-1046)

 

검찰: 그때(80.2. 중순경에서 2,3일 있다가) 마포구 아현동 혜성아파트에 있는 정책연구실 사무실에 집기를 내일 넣으니까 가보라고 하여 한일은행에 500만원이 예입된 온라인 저금통장과 피고인 이문영 명의의 도장을 줘서 받은일 있지요.

: . 받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연구 교수들의 수고비 등으로 나갔습니다.(14차 공판조서, 001094)

 

검찰: 피고인은 김대중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지요.

: .

검찰: 언제 얼마를 받았나요.

: 1980.2.26. 10:00경 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검찰: 돈은 어떻게 사용하였나요.

: 1980.2.28. 10:00경 김대중 집에서 송영 의원에게 100만원 같은날 11:00경 노환 의원에게 200만원, 3.2. 10:00 국회의원 회관에서 조형 의원에게 100만원 3.5. 11:00경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김목 의원에게 100만원 4.2. 10:00경 서린호텔 커피숍에서 박록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면서 송영 의원에게 100만원을 주었습니다.

검찰: 나머지 돈은 어떻게 하였나요.

: 저 임의로 사용하였습니다.

검찰: 피고인은 신민당 국회의원들에게 돈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 김대중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14차 공판조서 001167-1169)

 

O

검찰: 1980.3 말경부터 4.20경까지 사이에 전후 3회에 걸쳐 도서 출판비 명목으로 450만월을 상피고인 김대중으로부터 받은 사실이 있지요.

: . 도합 1,100만원을 받았습니다.

(110차 공판조서 002003-2005)

 

이해찬

검찰: 그때(4.7. 19:00) 덕이 이범 피고인으로부터 2만원을 받아 등사기를 사고 피고인은 이범 피고인과 같이 16절지 1,000매를 구입하였지요.

이해찬: .

검찰: 그날 저녁 21:00경 여의도 아파트에 있는 문근의 집에서 300매의 유인물을 만든 사실이 있는가요.

이해찬: . 있습니다.

(15차 공판조서 001425)

 

검찰: 피고인은 그때(: 4.19. 19:00경 포그니 경양식점) 덕이 이범 피고인으로부터 2만원을 받아 등사기를 사고 ) 범 피고인으로부터 5만원을 받은 사실이 있지요.

이해찬: 교통비로 1만원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이범이 5만원을 주었다고 하여 그렇게 받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

(15차 공판조서 001434)

 

설훈

검찰: 피고인은 1980.6.5. 18:00경 강남구 서초동 소재 제일생명 앞에서 조우 피고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설훈: . 10만원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검찰; 돈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설훈: 도피 자금으로 받은 것입니다.(16차 공판조서 001594)

 

 

8. 김대중씨를 비롯한 16명이 검찰에 반성문을 제출했으나 본 의원은 반성문을 제출한 적이 없습니다.

 

9. 공판 중 고문관련 답변

 

검찰 조사 과정 중 협박이나 고문을 당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원(17)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으며, 이중 3명은 조사과정 중 사실대로 진술했다고 진술했고 4명은 조사과정 중 허위사실을 진술한 적이 없다고 법정 진술했습니다. 정작 고문을 받은 본 의원에게는 그런 질문조차 없었습니다.

유형 1

검찰이 공판 때 검찰관이 억압을 하거나 폭행을 하거나 강요한일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답변한 피고인

 

김대중(13차 공판조서 000860)

(13차 공판조서 000980)

이해찬(15차 공판조서 001456~001457)

(13차 공판조서 000962)

(110차 공판조서 001992)

(14차 공판조서 001151)

(18차 공판조서 001734)

(15차 공판조서 001302)

(18차 공판조서 001754)

(14차 공판조서 1256)

(15차 공판조서 001353-1354)

(16차 공판조서 001514)

(19차 공판조서 001889)

(110차 공판조서 001964)

 

유형 2 : 검찰이 공판 때 검찰관 앞에서 조사받을 때 폭행이나 협박을 받아 허위진술한 사실이 있냐는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

 

O(16차 공판조서 001491)

O(16차 공판조서 001544-1545

 

유형 3 :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술하고 조서를 확인 후 서명 무인

검찰이 공판 때 피고인은 검찰관 앞에서 조사받을 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술하고 서명 무인하였는가요란 질문에 라고 답한 피고인

 

(15차 공판조서 001387)

이해찬(15차 공판조서 001456~001457)

설훈 (16차 공판조서 001595)

 

유형 4 : 피의자 신문조서를 읽어본 후 서명 무인했다고 진술

검찰이 공판 때 피의자 신문조서를 읽어본 후 서명하고 무인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라고 답한 피고인

 

이해찬(15차 공판조서, 001457)

(15차 공판조서 001353~1354)

(15차 공판조서 001387)

(18차 공판조서 001754)

(19차 공판조서 001889)

10. 본 의원 공판 진술

 

검찰: 학생들에 데모를 못하게 하였다는데 김상진 추도식에는 왜 갔었나요.

김대중: 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 그 정신을 존경합니다. 정치인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대권에 갔다오던 길에 분향은 할수 있다고 생각하여 함헌씨와 갔다가 그 유족이 있어서 제가 20만원 함선생이 2만원 해서 22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비서를 시켜서 주었고 분향소에 가보니 학생이 모여있었는데 함헌 선생을 소개하고 저를 소개하는데 김대중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조사를 한마디 하고 왔습니다.

(17차 공판조서 001677-1678)

 

검찰: 그때 서울대 학생회장인 심재철에게 20만원을 조의금으로 준 일 있나요.

김대중: 가족에 전하도록 비서에게 주었는데 비서가 누구에게 주었는지는 모릅니다.

검찰: 그곳에서 피고인이 조사를 했나요.

김대중: 심재철이가 먼저 함헌을 소개하고 저를 소개했는데 우리는 정치의 이용물이 아니라고 하며 저를 소개해서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두세마디 했습니다.(13차 공판조서 00963~964)

 

검찰: 피고인은 위 추도식에 이어 동일 12:30경 수원시 소재 서울 농대에서 거행된 김상진 장례식에 상주로서 참석한 사실이 있지요.

검찰: 위 장례식에는 김상진의 가족들도 참석하였나요.

심재철: . 김상진의 어머니가 소개 됐습니다.

(16차 공판조서 001600)

 

검찰: 김대중 피고인이 그때 피고인에게 20만원이 든 봉투를 준 사실이 있나요.

심재철: . 2만원은 함헌이 내어 전부 22만원을 받았습니다.

검찰: 위 돈은 무슨 명목으로 주던가요.

심재철: 눈치로 봐서 장례금으로 인정합니다.

검찰: 김대중 피고인의 연설이 끝난 뒤 학생들이 이에 자극되어 김대중 만세, 비상계엄해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사실이 있는가요.(검찰이 유시민 검찰측 참고인 진술서 인용한 것)

심재철: 일부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16차 공판조서 001601-1602)

 

 

11. 공소사실 시인 언론보도 기사제목

김대중씨 공판 관련 기사 제목

공소사실 대부분 시인’(한국, 조선, 동아 1980.8.20.) ‘공소사실 거의 시인’(경향, 한국) ‘사조직 좌익활동 시인’(동아 1980.8.19.) ‘김대중 좌익활동을 시인’(조선 1980.8.19.)

공판 중 김대중씨 비난이나 불리한 증언을 한 피고인들에 대한 기사 제목

-김대중 대통령 안돼 국가적 다행’(동아, 한국 1980.8.29.), ‘북괴관련 알고 한민통 관여’(조선, 경향 1980.8.29.), ‘북괴밀착 알면서 한민통 접촉(한국 1980.8.29.), ’유신인사 2만 제거 계획, 조총련 알고도 한민통 관여‘(동아 1980.8.30.) ‘유신인사 처형계획’(한국 1980.8.29.)

-김대중 국민연합 이용 반대’(동아 1980.8.26.)

-, 반정부 고취 활동 공소사실 시인(한국 1980.8.21.)

-공소사실 거의 시인’(경향 1980.8.20.)

-공소사실 시인’(동아 1980.8.22.)

 

학생시위와 관련한 피고인 기사 제목

-, , 이해찬 공소사실 시인’(동아 1980.8.22.)

-이해찬 이해찬 허위진술 시인’(한국 1980.9.3.) ‘이해찬 否認진술 뒤집고 사과’(경향 1980.9.3.)

-설훈, 학생 교외 시위주도, 각목, , 준비시켜’(한국 19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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