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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적폐 청산' 이름으로 어떻게 法治가 파괴되는지… 국민은 眞相 알아야"
2017.12.04
의원실 | 조회 38

[심재철 국회부의장]

"記者때 교통사고로 8개월 입원… '感謝'라는 단어 뜻 알게 돼
그때 정치 제의를 받고 입당…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

"'이념적 홍위병'이 세련되게 훨씬 강력한 폭동을 일으켜
이게 변모된 국가 안보 현실… 각국이 두려워하는 폭동이다"

심재철(59) 국회부의장은 지팡이를 짚고 커피숍에 들어왔다. 30년 전 그가 방송기자였을 때 같은 출입처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내란죄로 고발해야"라는 논란의 발언을 한 취재원으로 다시 만나게 됐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1980년 봄 당시‘서울역 회군(回軍)’결정은 현명했다”라고 말했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1980년 봄 당시‘서울역 회군(回軍)’결정은 현명했다”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국회부의장이고 5선(選) 의원인데 발언이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양새가 그렇지만, 당(黨)에서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제가 나선 겁니다. 현 정권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게 이미 도(度)를 넘어섰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요즘 초·재선 의원들은 용기가 없는 건지 너무 조용합니다."

―막상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엉뚱하다" "상식을 벗어났다"라는 반응이 있더군요.

"현 정권이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조치를 보면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내란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봅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제정신이 아니다, 내란죄가 아니라 정신착란죄"라고 비꼬았는데요?

"그렇게 말씀하는 것은 그분의 자유지요. 제 사무실로 항의 전화가 많이 왔습니다. 물론 제 의견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여당에서 국회부의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국회윤리위에 제소하겠다고 했지요?

"제가 다음 날 응답했습니다. 현 정부가 좋아하는 방식인 공론화위원회나 국민대토론회를 거쳐 국민의 진정한 여론을 확인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부의장직을 사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적폐 청산'의 이름으로 어떻게 법치(法治)가 파괴되고 있는지 진상(眞相)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적폐 청산'은 과거의 누적된 불법 사례를 청산해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를 '법치 파괴'로 봅니까?

"현 정권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가장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절차에서도 법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지금 진행되는 적폐 청산 작업은 헌법 제12조가 정한 적법 절차와 형사소송법 제308조가 정한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에 위배됩니다."

―어떤 근거로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합니까?

"법적 근거도 없이 특정 성향의 민간인을 주축으로 '적폐청산조사위원회'나 '적폐청산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국정원의 메인 서버, 각 행정부처, 사법부를 온통 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에 '청부 수사'를 내리고 있습니다. 명백한 헌법 질서 문란입니다."

―이런 조사 활동은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는 걸로 압니다.

"빠져나갈 구멍은 해놓았을 겁니다. 하지만 법률에 의한 게 아니라 훈령이나 규칙을 근거로 '적폐청산조사위원회' 등을 만든 겁니다. 사실상 수사(搜査)를 하고 있는 기구를 만들려면 개별 모법(母法)에 명백한 위임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불법 기구일 뿐입니다."

―현 정권은 비상 상황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한 '촛불 혁명'의 요구라고 하지 않나요?

"아무리 뜻이 좋아도 적법 절차를 거치라는 겁니다. 국정원과 행정부처 등의 과거 불법 사례에 대해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면 주권자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조사 대상 시기와 범위, 국가 기밀에 접근할 위원들의 자격 요건을 법으로 정한 뒤 법률 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가 직접 조사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게 법치주의입니다."

―과거에 법대로 안 된 것들을 바로잡겠다는 게 현 정권의 입장인데, 똑같은 상황을 놓고 어쨌든 전혀 다른 해석을 하게 되는군요.

"거의 날마다 과거 정권 관련 인사들이 검찰에 불려가고 구속되는데 왜 그러는지 투명하게 알아야 국민이 공감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행정 행위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적폐 청산 리스트'의 작성 과정, 적폐 청산에 대한 청와대의 모든 회의 자료, 적폐 청산과 관련된 각 부처 '적폐청산TF'의 회의 내용과 회의 자료 등이 공개돼야 합니다."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70%대입니다. '적폐 청산'에 대해 박수를 치는 국민이 훨씬 더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 여론조사 자체를 거부하는 국민의 비율이 반영 안 돼있습니다. 저는 체감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기관이 하나이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 조사 기관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면 이를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여론조사를 믿습니다만, 이런 부분이 숨어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국민적 지지를 받는 문 대통령이 정말 '내란죄와 국가기밀누설죄 혐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대중 정치인으로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 위해 해본 발언입니까?

"단정을 내린 것이 아니라 법원의 판단을 한번 받아보자는 겁니다. 적어도 '국가기밀누설죄'는 받아들여질 겁니다."

―형법 제87조에는 내란죄를 국토를 참절(僭竊)하거나 국헌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죄로 규정하고 있더군요. 문 대통령이 '폭동'을 일으키기라도 했습니까?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이버 공간의 등장으로 물리적인 폭동이 아니라 소위 '기능적인 폭동'으로도 국가 질서를 마비시키는 것이 매우 쉬운 상황입니다. 해킹 하나로 금융망이 먹통 되지 않습니까. 국가를 이렇게 흔들어놓는 것은 '내란'에 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국정 운영이 '폭동'이라는 뜻인가요?

"소위 '이념적 홍위병' 등이 매우 세련된 모습으로 훨씬 더 강력한 폭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게 변모된 국가 안보의 현실이고 각국이 두려워하는 폭동입니다. 가령 '국정원 적폐청산위원회'는 국정원의 모든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작년 6월에 있었던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류경식당 여종업원들의 집단 탈출 사건도 다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당시 사건에 개입된 공작원과 협조자들의 존재가 드러났을 게 아닙니까. 이는 분단 상황에서 정보기관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국가안보국(NSA)의 기밀을 위키리크스에 누설했다는 이유로 에드워드 스노든을 간첩죄로 기소했습니다. 지금 '적폐청산위원회'의 활동도 관점에 따라서는 스노든의 행위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정치에 개입하고 댓글 공작을 벌였던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의 행태가 '이념적 홍위병'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그런 일탈과 권한 남용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도 정보기관의 불법 활동이 쟁점이 됐습니다. 미국 상원(上院)의 처치위원회(The Church Committee)에서 이를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는 쪽으로 갔지, 지금처럼 과거 정권에 대한 정치 보복은 아니었습니다."

―국정원이 인권 침해와 용공 조작 등으로 문제가 있었던 '대공 수사권'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제도 개선으로 볼 수 있겠지요?

"물론 잘못된 점을 고쳐야 합니다. 하지만 정치 권력이 정보를 악용하는 것을 막아야지, 분단 국가에서 간첩을 잡는 정보와 수사 기능을 분리하겠다는 것은 정보기관의 능력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는 개선이 아니라 개악(改惡)입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설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까?

"이 정도까지 폭주할 줄은 예상 못 했습니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80년대 운동권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신들만 선하고, 목적이 옳으면 과정은 상관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심 부의장은 이들의 선배격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데, '변절했다'라는 비판이 있더군요.

"제가 학생 때는 독재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자는 정의감에 불탔지, 좌·우파 이념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80년대 운동권 이념 고수는 시대착오적입니다."

1980년 봄 당시 그는 '서울역 회군(回軍)'의 주역이다. 대학 교문을 벗어나 가두시위에 나선 대학생 10만여 명이 서울역 광장에 모여들었을 때 지도부 안에서는 강행과 퇴각을 놓고 논쟁이 불붙었다. 결국 '군부 개입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대학으로 되돌아가자는 그의 입장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강경파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퇴각 결정을 공격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 정문을 지키던 경찰 병력이 이틀 전부터 다 철수했어요. 그러자 학생들이 우르르 바깥으로 뛰쳐나간 겁니다. 서울역 집회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발적이었고 예상을 뛰어넘게 커졌던 겁니다. 지도부 안에서는 '계속 진격하자'는 주장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로서는 야간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가 우려됐어요. 남대문 방면에서 시위대가 버스를 밀고가 전경을 죽였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때 회군을 안 했으면 유혈 사태가 났을 겁니다. 광주 상황이 앞서 서울에서 벌어졌을지 모릅니다."

그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몇 달 복역했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군대에 징집됐다. 전역한 뒤 중학교 영어교사를 거쳐 1985년 MBC 기자로 입사했다. MBC 노조 설립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92년 MBC 방송민주화투쟁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광주일고를 나와 서울대총학생 출신인데 왜 정치 입문(入門)은 신한국당(자유한국당의 전신)으로 했습니까?

"그때만 해도 여야(與野)의 이념 차이가 크게 없었어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념의 편차가 극명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통합보다 분열의 간극이 더 벌어진 것 같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기회가 되면 정치를 할 계획을 갖고 있었지요?

"기자로 재직하던 1993년 여름,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1차선으로 가는데 맞은편 차선에서 트럭이 넘어왔어요. 거의 다 죽었다가 살아난 셈입니다. 병원에서 여덟 달 지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퇴원했어요. 기자로서는 취재 활동이 불가능하고 내근만 해야 했지요. 젊은 날 막막했지요. 그런 상황에서 신한국당의 입당 제의를 받았어요. 교통사고가 없었으면 기자를 계속 하고 있었을지 몰라요."

―그 교통사고로 인생이 바뀐 셈이군요.

"제 직업을 바꿔놓았으니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그 사고가 있은 뒤로 '감사(感謝)'라는 단어의 뜻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사람 목숨에는 내일이 없다는 것,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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